공공의료, 만능키가 아닌 지역의료 '연결자'로
- 작성자 :
- 의정홍보담당관실
- 날짜 :
- 2025-10-23
공공의료가 지역경제를 살릴 ‘만능키’처럼 여겨지곤 한다. 병원 하나 세우면 일자리도 늘고, 인구도 증가하며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떨어질 감만 바라본다고 단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단감인지, 떫은감인지는 먹어봐야 알 수 있다.
지방의 의료 현실은 냉혹하다. 보건소나 의원, 한의원은 있어도 정작 응급환자 한 명 제대로 살리기 어려운 곳이 많다. 지방의료원조차 중증·응급·감염병 환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처럼 필수의료는 수익성이 낮아 민간이 기피하고, 공공 역시 인력과 재정에서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 전체 의료의 90% 이상은 민간이 담당하고 있다. 병상, 인력 모두 민간이 중심이다. 그런데도 공공의료 논의는 종종 ‘공공 대 민간’이라는 대립 구도로 흐른다. 그러나 공공이 민간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다는 발상은 비현실적이다.
이제는 공공의료의 역할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모든 걸 직접 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의료를 조정하고 연결하는 허브’로 기능해야 한다. 공공의료원이 중심이 되어 지역 내 병·의원, 한의원, 보건소와 네트워크를 이루고, 응급·감염병·재난 상황에서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응급의료 공백 해소다. 시·군 단위 ‘지역의료연계협의체’를 구성해 공공병원, 민간의원, 응급의료센터, 보건소가 협력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즉시 연결되는 핫라인과 화상 협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민간의원의 응급당직 참여에는 실비 보상과 인센티브를 제공해 실질적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
또한, 응급·감염·재난 등 수익성 낮은 진료에는 별도 수가를 적용하고, 민간의사가 공공서비스에 참여할 경우 장비·행정 지원, 교육 등 실질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합리적 보상과 명확한 책임이 함께 가야 한다.
의료인력 부족 문제도 중요하다. ‘응급전담 코디네이터’를 지역마다 배치해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 행정인력을 연결하고, 위기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교육, 심리 지원, 근무환경 개선도 병행되어야 한다.
공공의료는 민간이 감당하지 못하는 영역을 메우고, 지역 의료체계를 설계·관리하는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감염병 감시, 재난 대응, 응급이송 체계 등은 공공이 주도하되, 평상시에는 민간과 협력해 지역 의료의 질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지속 가능한 재정 구조가 필수다. 단기 예산 중심의 ‘민원형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중앙정부, 지자체, 건강보험공단이 함께 ‘필수의료 기금’을 조성하고, 성과에 기반한 재정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공공의료 특별회계를 설치해 안정적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정의 리더십이다. 병원을 짓는 것보다 지역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민간과의 협력 체계를 제도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자체, 의료기관, 지역의사회, 주민이 함께하는 거버넌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공공의대처럼 10년 뒤 효과가 나오는 정책보다, 내년부터 실행 가능한 실질적 대책이 우선이다. 수천억 원이 드는 의대 설립보다, 연 50~100억 원으로 응급실 확충, 필수의료 보장, 야간진료 수당, 산간지역 순회진료 같은 직접적 효과가 있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다.
공공의료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지역 자원을 연결하고 조정해, 사람을 살리고 지역을 지키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공공의료의 진짜 역할이다. 진짜 단감을 원한다면 지금부터 제대로 키워야 한다. 공공의료의 가치는 건물이 아니라,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체계에 있다.
임종명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의원 / 전라일보.2025.10.23.(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