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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뽑힌 지방정치, 더 늦기 전에 갈아엎어야

작성자 :
의정홍보담당관실
날짜 :
2025-11-20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 동안 지방정부는 스스로의 힘으로 지역을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로 여러 제도와 정책을 쌓아 왔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이런 기대와는 정반대에 가깝다. ‘균형 발전’과 ‘풀뿌리 민주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소멸은 여전히 가속화되고, 지역 간 격차는 더 첨예해졌다. 지방정부가 ‘형식’만 남긴 채 제 역할을 잃어가는 사이, 정작 지방자치의 뿌리는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그 안을 채운 정치가 제 서사를 잃어버린 채 비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방자치의 근간으로 불려왔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 말조차 부끄러울 만큼 변질이 됐다. 지역 주민의 절박함을 대변해야 할 자리가 오히려 중앙의 이해관계와 당 지도부의 계산으로 채워지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지역에서 준비하고, 지역에서 살아온 이들이 현장에서 사라지고, 지역과 짧은 인연 또는 아무 인연도 없는 인물이 내려오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공천이 지역을 지배하고, 중앙의 판단이 지역의 민의를 덮어버리는 구조가 어떻게 지방자치의 발전이라 부를 수 있는가!

더 큰 문제는 그 구조가 지역 주민의 일상을 갉아먹는 방식이다. 선거만 되면 “지역을 바꾸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임기를 채우고 난 후, 그들의 행적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당선되면 잠시 머물다 떠나고, 낙선하면 지역과의 연결고리를 끊듯 없어지는 모습이 반복되는데, 이것이 진짜 지역 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선거 때만 지역 주민을 찾고, 선거가 끝나면 종적이 사라지는 정치는 지역 공동체를 소모품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역 주민들은 정치인의 발걸음이 지역의 삶을 향한 관심인지, 다음 공천을 위한 방문인지를 이제 이런 행태를 누구보다 잘 안다.

결국 주민들은 ‘또 몇 년 있다 떠날 사람’이라며 불신의 마음을 갖고, 지방자치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방자치 30년이 낳은 비극적 아이러니다. 지방자치는 정착됐다고 하는데, 지방자치를 믿을 사람은 사라졌다.

지방정치는 원래 눈에 띄지 않아도, 비가 오든 바람이 몰아치든 자리를 지키는 존재인 잔디와 같아야 한다. 지방정치는 땅에 깊이 파고든 뿌리와 넓게 퍼진 잎으로 지역 주민의 발자국을 담아내는 존재여야 하지만, 지금의 지방정치는 민들레 홀씨에 더 가깝다.

공천이라는 바람, 중앙의 기류, 선거판의 온도 변화에 따라 휙휙 날아가고, 뿌리는 흔들리고 있다. 지역은 언제까지 이런 얄팍한 정치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가에 씁쓸한 마음이 든다.

지방소멸이란 말은 지역을 지키겠다는 사람이 없음을 뜻하고, 지역에 뿌리내리려는 정치인이 없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방이 살아남으려면, 지방정치의 중심에 지역 주민과 지역의 시간을 살아온 이들이 서야 한다. 단기간의 머묾이 아니라, 지속적인 책임과 감각을 가진 정치가 필요하다.

지방자치 30년, 이제는 뿌리 없는 정치와 결별할 때다. 지역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늙어가는 사람, 지역의 아픔을 제 상처처럼 느끼는 사람, 주민의 삶을 허투루 보지 않는 사람이 앞에 서야 한다. 그래야만 지방자치가 힘을 갖게 된다.

지금의 지방자치는 ‘지방자치 정신이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에 다음 30년은 달라져야 한다. 지방정치가 다시 잔디처럼 깊고 낮게 그리고, 단단하게 뿌리내릴 때 비로소 지역은 흔들림 없이 설 수 있다. 지역에서 자란 정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정린 전북특별자치도의회 의원 / 새전북신문.2025.11.20.(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