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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전문병원,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작성자 :
의정홍보담당관실
날짜 :
2025-11-24

화상 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일상 속 뜨거운 물 한 컵, 농사일 중 튄 불씨, 공장 기계의 폭발, 산업현장의 사고까지 단 몇 초의 순간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특히 화상 치료는 “시간이 생명”이다. 사고 직후 몇 시간, 아니 몇 분 안에 어떤 치료를 받느냐가 회복 가능성과 평생의 고통을 결정한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냉혹하다. 우리 전북에는 아직 단 한 곳의 화상전문병원도 없다.

현장에서 화상환자가 발생하면 대부분 광주·대전 등 외부 전문병원으로 이송된다. 구급대는 밤새 도로 위를 달리고, 가족들은 병상 여부를 확인하며 초조한 시간을 견딘다. 환자는 고통 속에 골든타임을 잃어가지만, 지역 안에는 적절한 전문 치료를 제공할 병원이 없다. 의료진과 소방이 아무리 노력해도 ‘거리’라는 절대적 한계는 극복하기 어렵다. 심지어 도착한 병원에 병상이 없어 다른 도시로 이송되는 사례도 반복된다. 이는 치료 지연을 넘어 환자와 가족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문제는 이 상황이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북에는 산업단지, 제조업 밀집 지역, 농촌·어촌 등 화상 사고 위험이 상시 존재한다. 어린이·노인 등 취약계층은 가정 내 뜨거운 물과 난방 장치로 인한 사고에 더 취약하다. 그럼에도 도내 화상전문병원 부재는 단순한 의료 공백을 넘어 지역 안전망의 결정적 결함이다. 사고는 멈추지 않는데, 치료 체계는 제자리걸음이다.

최근 익산에 산재전문병원 설립이 추진되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다. 산업재해 중심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일부 화상 치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산재병원은 어디까지나 산업재해 환자 중심 기관으로, 화상 전문센터와는 구조적·전문적 역할이 확연히 다르다. 화상 치료는 피부 이식, 감염 관리, 수술, 재활, 정신적 치료가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전용 병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화상전문병원은 하나의 건물을 짓는 문제를 넘어, 지역 주민의 생명권을 지키는 기반 인프라다. 이는 중증 응급환자 치료 공백을 해소하고, 산업·농업·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화상 위험에 대비하는 최소 조건이다. “타 지역 이송”이라는 말 자체가 환자에게 절망이 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전북이 지금 직면한 과제는 명확하다. 임시방편이 아닌 ‘전북형 화상전문병원’ 설립이라는 근본적 해결책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이다. 도민의 생명은 행정적 논리나 재정 부담보다 앞선다. 전북이 특별자치도의 위상에 걸맞은 의료체계를 갖추고, 누구나 응급 상황에서 동등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도민의 기본권이자 지방정부의 책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만약 오늘 우리 가족이 화상 사고를 당한다면 “지역 안에서 바로 전문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 답을 “그렇다”고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화상전문병원이다. 전북이 더 이상 치료 공백 지역으로 남지 않도록, 이 문제는 더는 미룰 수 없다.

화상전문병원 설립은 전북의 생명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자, 산업·농업·생활환경 전반의 안전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정책적 선택이다. 이제는 행동할 때다. 전북특별자치도가 도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확고한 전문 의료체계를 갖추기 위해, 화상전문병원 설립을 반드시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김희수 전북특별자치도의회 부의장 / 전라일보.2025.11.2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