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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기본소득 취지 살리려면 재정구조부터 바꿔야

작성자 :
의정홍보담당관실
날짜 :
2025-12-03

농어촌 기본소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령화 가속, 청년 이탈, 구조조정의 파고에 흔들리는 농촌은 말 그대로 지역소멸의 전선 한복판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소득은 농촌의 생명선을 붙잡는 마지막 정책 수단으로 기대돼 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지방재정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농업·복지 필수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취지는 빛나는데 구조가 버티질 못하는, 딱 그런 상태다.

첫째, 지금의 재정구조로는 지방정부가 농어촌 기본소득을 독자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농촌 지역은 세입 기반이 약하고 인구는 줄어든다. 지방세는 빠르게 줄지만 고령화로 인한 복지 수요는 오히려 늘어난다. 여기에 기본소득까지 전액 지방비로 부담하는 순간, 지방재정은 선택의 여지 없이 ‘축소예산 모드’로 들어간다. 실제 몇몇 지자체에서는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려다 농업기반시설 투자, 청년농 육성, 고령층 돌봄 등 핵심 사업을 줄이는 일이 벌어졌다. 지역을 살리려는 정책이 오히려 지역의 기반을 허물어버리는 모순이 생긴다면, 이는 재정 설계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분명한 신호다.

둘째, 농어촌 기본소득은 지방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적 과제로 승격돼야 한다. 농촌은 식량안보, 환경보전, 수자원 관리 등 국가 전체의 공익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농촌의 붕괴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균열이다. 그런데 이 무거운 짐을 지방정부 재정에만 떠넘긴다면, 정책은 태생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잃는다. 이제 기본소득을 지역소멸 대응이라는 국가전략에 명시하고, 국비 매칭 체계, 특별교부세 가점, 지역소멸대응기금 연계 등을 포함한 ‘중앙-지방 공동 재정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유럽 주요국들이 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해 중앙정부가 비용을 분담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도 농어촌을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기본소득을 단순 현금지급 방식에서 ‘지역순환형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화폐 지급은 역외 유출을 막고 지역 상권과 영세 자영업자에게 숨통을 틔울 수 있다. 더 나아가 농지환경관리, 농촌 돌봄, 공동체 활동 등 공익적 프로그램과 연계해 지급한다면, 기본소득은 단순한 ‘소득 보전’이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환경 개선·공동체 회복을 동시에 달성하는 다기능 정책으로 진화할 수 있다. 같은 예산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말 그대로 “가성비 높은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농촌 예산은 한 푼이 아쉬운 만큼, 이왕이면 여러 번 돌고 돌아 지역에서 쓰이게 하는 편이 낫다.

넷째, 기존 농업·복지 사업과 기본소득의 중복 여부를 면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지금 지방정부에는 목적과 대상이 겹치거나 성과가 미미한 보조사업이 적지 않다. 기본소득 도입과 함께 이들 사업을 재정비한다면 전체 예산 규모를 늘리지 않고도 안정적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급 대상 명확화, 부정수급 방지 시스템 구축 등도 기본소득의 공정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필수 장치다.

농어촌 기본소득의 목표는 단순한 현금 나누기가 아니다. 사람이 살 수 있고, 농업이 유지되며, 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살아 있는 농촌’을 만드는 데 있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금액의 크기보다 구조의 지속 가능성을 먼저 설계해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가 현실성 있는 기본소득 모델을 만들어 중앙정부와 함께 국가적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면, 농어촌 기본소득은 지역을 지키는 강력한 미래정책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제 농어촌의 취지를 살리고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재정구조 개편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때다.

출처 : 전라일보(http://www.jeolla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