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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와 허스토리, 그리고 스토리

작성자 :
의정홍보담당관실
날짜 :
2025-08-11

내 딸은 현역 해군 장교다. 고3시절,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뜬금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걱정이 앞섰다. 여전히 남성우위의 문화가 지배하는 군대 그것도 위계가 철저하다는 함정을 타고 싸우는 해군이라니 아비로서는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단호했다. 체력검정 준비를 하는데 테스트 결과가 여의치 않으니 밤늦게까지 공부를 마친 후에도 체력단련에 열심이었다. 그렇게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딸아이가 임관한 후에 생각해 보니 딸아이의 해군사관학교 지원을 두고 아비 입장에서 걱정을 앞세웠던 것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도 가졌던 것 같다. 과거에 비해 여성의 군문 진입이 활발해졌지만 그건 세상에서 벌어지는, 나와 큰 상관 없는 여러 가지 변화의 하나로만 이해했을 뿐, 정작 내 문제가 되었을때는 전혀 다른 판단과 결정을 하게 된다는 일종의 창피한 반성이기도 했다. 머리로만 페미니스트였을 뿐, 기실 나도 가슴으로는 별반 다름없는 마초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에 다소 소스라치기도 했다.

인류는 성별 구분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인류의 역사는 남녀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역사는 히스토리(he-story)로 기억되기 십상이다. 허스토리(her-story)도 절반은 되는데 여성의 목소리는 묵음 처리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20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페미니즘 운동이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세계는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는 히스토리도 아니고 허스토리도 아닌 스토리로 기록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나 민주화운동 역사에서도 일단은 남성들의 활약상이 우선적으로 조명받고 나중에야 드러나지 않은 여성들의 헌신적 역할을 재조명하기 바쁘다. 이런 행태 또는 패턴은 서구 국가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AI와 양자컴퓨팅이 실현되고 있는 21세기 첨단 문명 사회지만 히스토리와 허스토리의 문제 즉, 남성 중심의 세계관과 사회질서는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진게 없는 것이다. 내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딸이 모두 여성인데도 말이다. 어찌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의식 속에 천착해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은 사실관계와 다른 측면도 상당하다. 철저히 가부장적 봉건사회였던 조선시대에도 남성이 집안의 대소사와 살림을 챙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집안의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여성의 영향력이 오히려 컸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어떤 학자는 대부분의 무당이 여성인 점을 두고, 무속이라는 의식에서 일종의 제사장 역할을 여성이 맡음으로써 남녀의 사회적 지위 역전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어찌 됐든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해 왔다. 여성에 대한 편견도 계속해서 희미해져 갈 것이고, 먼 훗날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소거된 히스토리도, 그렇다고 여성이 남성을 압도하는 허스토리도 아닌 스토리 그 자체로 기록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남녀의 기계적 평등을 바라서가 아니다. 인류가 걸어온 역사적 궤적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고 앞으로 걸어갈 미래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딸아이의 어떤 선택도 존중하고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기도 하지만 내 스스로 딸 아이의 선택을 어떤 여성의 선택으로 가두어서 이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딸아이가 써내려갈 그 아이만의 스토리,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이 써내려갈 스토리를 응원한다.

이명연 전북특별자치도의회 부의장 / 전민일보.2025.08.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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