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창은 녹슬지 않는다
- 작성자 :
- 의정홍보담당관실
- 날짜 :
- 2026-09-17
“야~ 자슥들아. 대학을 연필 굴려 들어왔냐? 뒷구멍으로 들어왔냐?” 1984년 서울 모 대학 입학 후 첫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과 동기들이 ‘정읍’을 몰랐다. 발끈했다.
“1894년 경복궁 점령 때 너희 서울 할아버지들이 도망치거나 뒷짐 지고 있을 때, 우리 할아버지들은 죽창 들고 싸우다 죽었다.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 고부의 정읍을 모르냐?” 그날 이후 별명이 ‘염봉준’이 되었다.
“그럼 뭐 임진왜란 유공자도 만들지?” 지난 8월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전북특별자치도의 동학농민혁명 유족수당을 두고 한 말이다.
역사는 지식의 문제라기보다는 의식의 문제다. 아무리 명문대를 나오고 검사·판사를 지냈어도 역사에 대한 통찰이 없으면 부지불식간에 천박한 역사 인식이 뽀록난다. 역사관의 부재는 홍범도 장군을 육사에서 몰아내려 했고 21세기 대명천지에 내란을 도모하거나 이를 철없이 옹호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올해부터 도내에 1년 이상 계속 거주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 723명에게 연 12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한다. 전국 광역자치단체 최초다.
필자가 2024년 제·개정한 「전북특별자치도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가 근거다. 만시지탄이나 시의적절한 결단이다.
‘보국안민·척양척왜’를 외친 동학농민군은 일본군과 맞섰다. 이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로 수많은 사람이 그 과정에서 죽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이후 항일의병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물줄기의 출발점이었다. 그 정신은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촛불혁명으로 솟아났다. 12·3 내란에 맞선 ‘빛의 혁명’도 그 연장선이다. 역사는 비약하지 않는다.
그러나 100년 넘게 혁명은 반란으로 매도됐다. 의로운 행동은 역적으로 취급당했다. 후손들은 침묵 속에 버림받은 역사의 고아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중요한 것은 이 특별법이 유족의 범위를 법으로 정했다는 사실이다. 전북자치도가 임의로 유족을 정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특별법으로 인정한 유족에게 지방정부가 조례에 따라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왜 지방정부가 유족수당을 주느냐 재차 묻는다면, 특별법에는 유족수당 등 실질적 보상이 빠졌기 때문이다. 국가도 못하는 일을 전북특별자치도가 하는 것이다.
또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독립유공자보다 한 세대 앞선다. 따라서 후손의 범위도 더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를 두고 “임진왜란 유공자도 만들 것이냐”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역사의식의 빈곤을 넘어 무지의 발로다. 한편, 국힘 몇몇 의원이 전북도 국정감사에서 동학유족수당을 벼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총은 녹슬어도 서슬 퍼런 죽창은 녹슬지 않는다.
이번 유족수당 지급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독립유공자 서훈과 동학농민혁명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으로 가는 방아쇠다. 특별법으로 항일 무장투쟁의 역사적 성격을 인정한 만큼 독립유공자 서훈은 역사의 재정립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모태인 동학농민혁명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역시 마찬가지다. 열매를 기록하면서 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승리한 자의 이야기는 역사가 되고 실패한 자의 이야기는 전설이 된다는 말이 있다. 전북자치도의 유족수당 지급으로 바야흐로 전설이 역사가 되어가고 있다.
염영선 전북특별자치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 / 전북일보 2026.09.17.(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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