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의 역설
- 작성자 :
- 의정홍보담당관실
- 날짜 :
- 2026-10-22
“유해진이 없으니, 축제가 매가리가 없구먼.”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에 함께한 군산의 강태창 도의원이 아쉬워했다. ‘왕과 사는 남자’와 ‘암살자(들)’의 주연 배우 유해진은 관객의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했다.
영화가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난은 배우를 향한 인신공격과 자택 앞 집회까지 이어졌다. 결국 출연진의 개막식 참석과 야외무대 인사가 취소됐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타짜4냐, 암살자(들)이냐.’ 필자의 가정은 명절이면 가족·친지와 영화를 단체 관람한다. 올해는 짜장이냐 짬뽕이냐만큼 선택이 어려웠다. 알 파치노의 ‘대부’, 주윤발의 ‘영웅본색’, 황정민의 ‘신세계’ 같은 느와르를 좋아하는 필자는 ‘타짜4’를 원했다. 하지만 미성년 아들을 생각해 ‘암살자(들)’를 예매했다. 정작 아들은 친구를 선택했다. 낙장불입이었다.
영화 속 두 장면이 필자의 경험과 오버랩되었다. 유해진이 연기한 형사의 아들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울 때, 국민학교 3학년 필자는 육영수 여사 피습 소식에 펑펑 울었다. 사건 뒤 파면된 형사가 국기 강하식 경례를 외면할 때, 필자는 학생운동 관련하여 반강제 징집을 당한 뒤 국가에 반감을 품었다. 반공과 독재시대가 남긴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영화는 1974년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벌어진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배경으로 총성과 탄피의 불일치, 연단 맞은편 여고생의 피격이라는 의문을 따라간다. 문세광의 단독 범행이라는 공식 발표와 기록 너머에 다른 가능성은 없었을까, 제3의 암살자는 없었을까. 허진호 감독의 상상력으로 빚은 창작이다. 중앙정보부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의 불신과 음모를 엮어 관객에게 묻는다.
“다큐는 사실을 보여주고 영화는 사실에 질문을 던진다.“
박정희 대통령을 모독했다거나 육영수 여사의 죽음을 조롱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영화의 장면과 맥락을 살피지 않은 채 작품에 낙인을 찍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왜곡이다.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작품을 논하려면 먼저 작품을 보고, 배우를 공격하기 전에 영화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서울 가본 놈하고 안 가본 놈하고 싸우면, 안 가본 놈의 목소리가 큰 법이다.
흥행은 역설적이었다. 비난과 압박이 커질수록 영화는 더 알려졌고, 관객의 호기심도 커졌다. 보수세력의 공세가 ‘스트라이샌드 효과’를 낳았다. 역사 왜곡 논란 이후 관객유입이 오히려 상승해, 200만을 넘어 300만도 넘겼다. 또한, 싱가포르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일등 홍보대사는 단연코 정치권이다. 국민의힘 주진우 국회의원은 유해진을 겨냥해 ‘북한상’이라는 표현까지 들먹였다. 비판이 외모를 겨눈 순간, 논리의 패배를 자인한 셈이다.
“창작은 창작일 뿐이다.” 부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 ‘붉은 수수밭’의 장이머우 감독은 창작이 반드시 사실의 복사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당연하다.
영화가 역사 교과서가 아닌 만큼 암살자(들)에 대한 비판과 반론은 환영하나 그 방식이 협박과 모욕이 돼서는 안 된다. 작품에 명예훼손이나 법률 위반이 있다면 판단은 사법부의 몫이다. 정치권 역시 영화의 해석을 두고 토론할 수 있다. 하지만 창작자를 침묵시키고 배우를 겁박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대가는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K컬처가 치뤄야 한다. 한 번 던진 말은 거둬들일 수 없다. 낙장불입이다.
염영선 전북특별자치도의회 기획행정위원장 / 전북일보 2026.10.2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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